블로그 이미지
이에틸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Rss feed Tistory
자기중심주의 2010. 11. 8. 01:03

보고싶어요

'한국 레슬링 대부' 이상균 전 태릉선수촌장 타계
10-11-05 14:24       
[마이데일리 = 김용우 기자] 이상균 전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장이 타계했다.

대한체육회는 5일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자 한국레슬링의 대부'로 불려졌던 이상균 전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장이 5일 오전 향년 80세로 타계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노환으로 알려졌다.

1931년에 출생한 고인은 1947년 당시 을지로 3가에 소재한 조선체육관(후에 '한국체육관'으로 개칭) 레슬링부에 등록하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고 1949년 전국신인선수권대회에 참가하면서 한국레슬링 선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25 전쟁 당시 육군특무부대 문관으로 근무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레슬링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왼손 손가락 3개를 절단하는 위기를 맞았으나 뼈를 깍는 훈련과 자신에게 맞는 전술개발 그리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1951년 제32회 전국체전 레슬링 라이트풀라이급 우승으로 재기하면서 그의 화려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올림픽에 참가하여 레슬링 밴턴급에서 4위를 차지했고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대회 레슬링 코치를 시작으로 제18회 동경올림픽 국제심판,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 레슬링감독, 제19회 멕시코올림픽 국제심판 등 지도자와 국제심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고인은 장창선 선수의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 레슬링 은메달 획득 등 1971년 국제레슬링연맹 특1급 국제심판까지 지도자로 활동하며 이후 우리나라 레슬링을 빛낸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뛰어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후 우리나라 체육행정을 이끌게 된 고인은 1971년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 동국대학교, 대한유도대학교 강사, 서울시체육회 이사 및 사무처장, 1994년 제13대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장을 차례로 역임하며 선수와 지도자로써 한국스포츠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고인은 한국체육 발전에 대한 공로로 경희대학교 문화상(체육부문), 체육부장관 표창, 제37회 서울시 문화상(체육부문), 미연방 스포츠아카데미(공로상) 수상을 한 바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7호에 차려졌으며 장지는 이천호국원,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 30분이다.
태릉선수촌 = 김용우 기자 hiljus@mydaily.co.kr





[올림픽 즐겨찾기] 손가락 없는 '레슬링 영웅' 이상균

[조선일보 2004-06-11 17:54]

[조선일보] 경기가 끝났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위엄 있는 자세로, 매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운동복에다 허겁지겁 두 손을 닦기 시작했다. 그에게 젖은 손을 내민다는 건 무지막지한 결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코치들이 나를 에워쌌다. 마지막 결승전이 남아 있으니 절대로 긴장을 풀지 말라는 신호. 그렇지만 나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그를 만나야 했다. 상황판에선 그의 최종 성적이 4위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천천히 걸어간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서 마침내 대기실 문 앞에 이르렀다. 안에서는 한 남자의 나지막한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내 양 손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를 방해하지 말자. 내가 아는 위대한 레슬러에게 나는 그렇게 경의를 표했다. 터키 사람 무스타파 다기스타니,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밴텀급 금메달리스트의 회고다.

조막손 투수 애보트를 아는가. 1988년 서울 올림픽, 시범경기로 펼쳐진 야구에 참가한 미국 국가대표팀 투수. 메이저리그에도 진출, 언젠가 노히트 노런 경기를 한 적도 있다. 올림픽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40년대 중반 남자 자유형 수영 세계기록을 연달아 경신하며 패전에 찌든 일본 국민의 가슴에 한줄기 빛을 심어주었던 사람이 있다. ‘후지산의 날치’로 불리던 후루하시(古橋廣之進)라는 이름의 사나이. 이 영웅에게는 왼손 가운뎃손가락이 없었다. 애보트나 후루하시는 장애를 극복했기에 추앙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 능력의 한계치를 넓혀놓은 존재이기에 존경을 받는 것이다.

레슬링의 공격은 일단 상대를 잡는 것으로 시동을 건다. 그렇다면, 손가락이 없는 레슬러를 상상할 수 있는가. 어느 레슬러가 있었다고 하자. 1951년 군에서 수류탄을 다루다가 왼손 엄지부터 세 개의 손가락이 없어졌다고 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뒤로하고 그 레슬러는 손목을 쓰는 리스트 록, 상대의 팔을 끼는 암 훅 등의 변칙기술을 연마하여 불가능을 뛰어 넘었다.

‘이것이 마지막 올림픽 경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솟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중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세계인들은 그때까지도 대한민국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가는 곳마다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주었다. 나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운동선수로서 내 조국의 품격을 높이고 싶었다.’

패배가 확정된 순간에도 조국의 명예를 먼저 생각했던, 우승자 다기스타니가 경의를 표했던 진정한 영웅의 이름을 이제야 밝힌다. 그의 이름은 이상균(李相均), 대한민국 육군출신 6·25 참전 상이용사다.
(숭실대 문창과 교수 장원재)

장지는 국립현충원으로 변경 오늘 두시경 충혼당에 안치되셨다 49제는 현충원의 호국지장사에서 지내게되었다 
수업때문에 삼우제를 참석하지 못하게될것같아 이렇게 걱정
오는 11월 30일은 할아버지 팔순날이시며 할아버지의 달력은 내년1월까지 채워져있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보고싶어요
할아버지사랑해요보고싶어요 보고싶어요 이토록 자랑스러운데 아직도 이렇게 많이 그리워요벌써부터정말많이
아직도꿈같은지난삼일

'자기중심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0) 2010.11.14
안녕  (2) 2010.11.13
기록  (1) 2010.11.04
20101101  (0) 2010.11.04
리스폰시빌리티  (1) 2010.10.30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