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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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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듣쓰 2010. 1. 17. 17:30

이곳에 버찌꽃이 있어


마른 모래 바람이 우리를 틔웠다.

어미는 검은 아스팔트가 아마도 양보한 흙더미에서 짧은 뿌리를 내렸는지

달리는 도로의 성황(城隍)이 되려고 피어난 것일까.

이윽고 흩날릴 나의 몸뚱아리는 검은 바퀴로써 사라지기 위함이려나

홀로 매캐하거늘 어찌 붉어지오

 
이 하늘에 나비가 죽었음을

나보고

어찌 붉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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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듣쓰 2010. 1. 17. 17:29

눈이, 물이


내 앞에 하얗게 눈이 왔습니다.
낯설어 두근거리던 나는
이 아름다운 것을
이 세상 모두에게 보여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수줍은 하얀 것을 두 손에 그렁 쥐고 달렸습니다.

눈밭을 벗어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이것은 모두 녹고 말았습니다.
나는 돌아가 이 조용한 것들을 주워 모아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녹고 맙니다.
다시 돌아가 한 움큼 쥐고 달렸습니다.

아픕니다. 무언가를 쥐고 가는 것이란
아픕니다. 무언가를 위해 달리는 것이란

내 달림은 일만 개의 해와 달을 따라갔습니다.

아픕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이란

또 그만 주르륵 흩어져버려
퉁퉁 부은 두 손은 내 헛된 눈물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바다가 보입니다.

내 헛된 걸음과 내 헛된 달림이 내 헛되게
녹아버린 눈이 고이고 모여 푸르러진
바다가 다만 아득히

내 눈앞에서
이 세상 모두의 눈앞에서

 

낯설고 수줍게 두근거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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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듣쓰 2010. 1. 17. 17:28

나유타


나의 벽엔 그저 거울만이 걸려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그 앞에 서있는 나와 나의 뒤안을 오롯이 비추어줍니다.

그것이 한 치의 틀림도 없어서

나는 하얀 명주 수건을 구해와

거울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유리창이 되도록 유리창이 되도록

 


시간이 흘러

희던 명주 수건은 새까맣게 더러워졌으나

다만, 나의 거울은 여전히 나를 틀림없이 비출 뿐이었습니다.

그 앞에 서있는 나와 나의 뒤안 만을 오롯이 비추어줍니다.

더 이상의 것은 용납 되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까만 명주수건을 빨아

이 거울을 무량히 닦습니다.

유리창이 되도록 유리창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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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듣쓰 2010. 1. 17. 17:26

분실물을 찾습니다


무지한 꼬마를 기억할까
꼬마가 안고 가던 작은 도서관을 기억할까

꼬마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 책들을
노래와 춤으로 가득 채워나간 작은 방을
커다란 도서관을 찾게 되서 인지 어딘가에 내려놓은 날을
잊어버리고 만 것을

이렇게나 자란 후에야 깨닫고서
작은 도서관을 내려놓은 날을
되찾고 싶어 되찾고 싶어도 구하지 못할 어제로의 길을
어쩌지 못한 채 고개만 연신 뒤로 돌아다 볼 것을

무지한 꼬마는 기억할까
나는 안고 가던 작은 도서관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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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듣쓰 2010. 1. 17. 17:23

화운데이션


나에게 부여된 공간
반 평조차 되지 않는 책상 위

2156일 하고 13시간 하고 3분 58초 동안
난 그곳 위에 잠자코 그저 서 있어야 했다


비행기의 이머전시 마스크처럼
교실 천장에서 떨어진 올가미를 내 목에 드리운 채

하지만 나는 책상에서 뛰어 내려
대롱대롱 활고자에 매달릴 수가 없다


나는 책상 밖의 세상으로  갈 수가 없다

책상을 부수려 무너뜨리려
아무리 발을 굴리고 밟고 밟아도
반평조차 되지 않는 세상은 너무도 강하다

 

이윽고 여전히 목에 목줄을 맨 채
하얀 얼굴과 하이힐로 책상을 졸업할
나의 모습은 너무 약하다

 

책상 너머 반 평 이상의 세상으로 나아간 나의 목에 목줄
목줄은 결국 책상에 이어져 있다

나는 책상 밖의 세상으로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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